번뇌가 일어나는 것은 내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 바다에 가서 ‘파도야 일어나지 마라.’ 해도 파도가 일어나듯이, 이 번뇌는 일어나지 말라고 해도 일어납니다.
다만 내가 그 번뇌에 빠질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꾸 어떤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면 번뇌에 빠져서 번뇌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번뇌가 일어나든지 말든지 상관을 하지 말고, 번뇌야 일어나라 일어나지 마라 하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런 번뇌가 일어나네, 이런 생각도 일어나네, 지금은 하고 싶은 생각이 일어나네, 지금은 하기 싫은 생각이 일어나네.’ 하며 그냥 일어나는 걸 일어나는 것으로 인정만 해야 됩니다.
거기에 구애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결국 여러분의 의지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인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자꾸 ‘인생의 목표, 목표’ 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인생에 의미를 너무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인생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오늘 아침 한 끼 배부르게 먹었는데 무슨 인생에 불안할 일이 있습니까?
오늘 저녁에 떨지 않고 잘 곳이 있는데 뭐그리 인생에 불안할 일이 있나요?
그래서 당신, 행복합니까?
여러분은 인생의 과정을 자꾸 무시합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나 똑같은 내 인생입니다.
내리막길을 갈 때나 오르막길을 갈 때나 똑같은 내 인생입니다.
인생은 과정이 중요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예요.
등산 가다 중간에 다친 사람이 있으면 업고 내려와야지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꼭대기 올라가는 게 목표이긴 하지만 갈 수도 있고 못 갈 수도 있는 겁니다.
꼭대기에 못 올라갔다고 해서 등산을 안 한 것은 아니지요.
하루하루의 직장생활이 여러분 자신의 인생입니다.
지금 내 삶의 하나하나가 그대로 내 인생이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지금의 생활을 내 삶의 소중한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편해집니다.
남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나를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꾸어 보아서 그럴 만도 하겠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섭섭함도 없어지고 화도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만나도 불편하지 않고, 일도 같이 할 수 있는 거지요.
‘내 카르마도 못 고치는데 내가 어떻게 남의 카르마를 고치겠나?’ 이렇게 인정하고 나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같이 일할 수 있고 같이 살 수 있습니다.
잘 사는 삶, 잘 쓰이는 삶
자동차든 집이든 물건이든 너무 쓰면 빨리 망가지고 안 쓰고 놔둬도 녹슬어 망가집니다.
적당하게 쓰면서 적당하게 고쳐야 훨씬 더 오래갑니다.
존재 자체가 그렇습니다.
‘삶’이라는 글자는 엄격하게 말하면 ‘쓰인다’에서 온 말입니다.
우리가 기계 같은 것들을 쓰다가 쓸모가 없어지면 명이 다 되었다고 하지요.
쓸모가 없다는 건 죽음이요, 쓸모가 있는 게 삶 입니다.
불행 가져오는 습관부터 끊으십시오
우리는 우리가 겪는 불행을 자꾸 남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남 탓으로, 아내 탓으로, 남편 탓으로, 부모 탓으로, 자식 탓으로, 이웃 탓으로 돌리지 마십시오.
바로 자기 자신을 돌이켜보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편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면서 또 다른 한 편으로 미처 아직 깨닫지 못한 이웃을 위해서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간다면 삶의 의미,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보람 있게 살 수 있습니다.













